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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혼] 들끓는 베트남 “이 치욕을 어떻게…”
카네이션 2006-05-02 10:13:42   1,514
[한겨레] 한국은 인종주의의 새 가해자가 되어가는가. 결국 문제가 터졌다. 지난 4월21일 <조선일보> 사회면 머리기사.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를 보고 한국의 베트남 유학생들은 격앙했다. 기사의 내용은, 기자가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중개업체를 방문해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들을 ‘고르고’, 베트남 여성들은 ‘골라지기를 염원하는’ 맞선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한 것이었다. 사실관계는 하나도 틀린 게 없었지만, 비판적 시각의 결여가 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튿날 베트남 유학생 10여 명은 서울 대학로에 있는 시민단체 ‘나와우리’ 회의실에 모였다. 기사를 보고 수치심이 들었다는 학생들은 각자 한마디씩 쏟아냈다.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주오?


“베트남 여성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다는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있어요. 기분이 나빠요. 한국 남성도 부자가 아닌데. 한국에서도 가난한 생활을 견뎌야 하잖아요. 그런데 기사엔 그런 말 한마디도 없고….”

“텔레비전에서도 베트남 국제결혼을 재밌게만 다루고 있어요. 한국 남성 입장에서 좋은 면만 보여주는 거지요.”

“한국 남성들은 물건 사러 오는 것처럼 베트남에 와요. 사실 기사만 문제가 아니지요. 베트남 국제결혼 방식의 문제가 더 근본적이에요. 한국 남성은 왕자고 베트남 여성은 신데렐라인가요?”

베트남 국제결혼은 다분히 ‘매매혼’적인 성격을 띤다. 대부분의 중개업체가 주관하는 결혼여행의 일정은 이렇다. 첫날 밤 베트남 도착, 둘째날 4시간 맞선과 신부 선택 그리고 부모와의 상견례, 셋째날 에이즈 및 정신과 검사, 넷째날 결혼식과 합방. 수속비는 800만~1천만원. 신부는 수십 명의 후보 가운데 남성이 직접 고른다. 베트남 여성에게는 후차적인 거부권이 있을 뿐이다. 요약하자면, 한국 남성들이 불과 사나흘 만에 신부를 고른 뒤 백년서약을 맺는 ‘속성 결혼식’인 셈이다.

<조선일보> 기사는 이러한 매매혼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기사 위에 딸린 사진은 신부를 ‘고르고 있는’ 한국 남성 앞에 다소곳이 앉은 신부 10여 명의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비쳤다.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주오”가 사진 제목으로 박혔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이러한 결혼중개업 자체가 불법이자 성매매로 간주되고, 이로 인해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은 빠져 있었다. 한국인에게는 그저 신기한 결혼 과정일 수도 있지만, 베트남인에게는 모욕적인 신부 매매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균형 감각은 중요했다. 생각해보라. 1950~70년대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을 두고 미국 신문이 ‘희망의 땅, 아메리카로!’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한국인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이날 유학생들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자회견은 4월2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에서 열렸다. 학생들이 손수 만든 피켓에는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기자회견에는 인터넷에 뜬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도저히 화가 나 참을 수 없어서” 찾아온 베트남 여성도 보였다.

베트남 국제결혼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1년 134건에 불과하던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결혼은 지난해 5822건까지 늘어났다. 5년 만에 43배가 증가한 것이다. 국제결혼 가운데 18.7%로 중국(조선족) 여성과의 국제결혼에 이어 두 번째 비중이다. 농촌에 가면 베트남 며느리를 보기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다. 2005년 한 해 동안 농림어업 종사 남성의 국제결혼 비중은 이미 35.9%에 이르고, 이 가운데 베트남 신부가 가장 많다.


<한겨레> 등에 이미 범람한 광고들





“현실적으로 사나흘 만에 어떻게 상대방을 알고 결혼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신랑 신부가 모두 결혼을 원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려니 통역이 필요하고, 떨어져선 통역이 안 되니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에 갈 수밖에요. 그렇다고 오랫동안 베트남에서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그런 방식이 나오는 거죠.”

베트남 전문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 여건을 들어 매매혼적인 맞선 과정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당국이 국제결혼중개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봄·가을에 일제 단속을 벌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외화의 유입 통로이기 때문에 묵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맞선을 감수하고도 결혼하려는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수요는 넘쳐난다. 최근에는 베트남 결혼을 알선하는 개인이나 영세업체까지 난립하기 시작했다. 중개업체 관계자는 “현지 베트남 여성 모집업체와 관계만 트면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거리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현수막 광고의 상당수는 이들이 설치한 것이다.

특히 신문이나 인터넷, 현수막에 실리는 광고에서 베트남 여성은 종종 상품화된다. 지난 2월 <한겨레>에는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 ‘베트남 신부의 장점- 혈통이 우리와 비슷하다(몽고반점이 있음), 일부종사를 철칙으로 하고 헌신적으로 남편을 섬긴다, 중국·필리핀 여성과 다르게 체취가 아주 좋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수정됐지만, 이같은 광고는 거리와 인터넷 도처에 흩어져 있다.

유학생들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논란은 베트남으로 확산됐다. 베트남 관영 유력 신문 <뚜오이쩨>가 4월25일 한국인 구수정(<한겨레21> 전문위원)씨를 통해 관련 사실을 크게 보도하자, 잇달아 다른 신문들도 이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뚜오이쩨>는 4월27일 편집위원회 명의로 <조선일보>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뚜오이쩨>는 “스스로를 부자 나라의 부자 신문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나라의 가난한 여성들의 인격을 무시한 것 아니냐”며 베트남 여성과 베트남인들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베트남 결혼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티키엣 베트남여성연합회 주석(공산당 중앙위원)은 4월26일 <뚜오이쩨>와의 인터뷰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베트남 여성을 상품처럼 대한 것을 보고 모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베트남여성연합회는 공안기관에 베트남 여성을 해외에 보내는 불법 결혼중개업체와 중개자들을 일망타진할 것을 요청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은 언론에 해명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안태성 대사관 공보관은 4월27일 전화 인터뷰에서 “4월26일 오후 베트남 외교부를 찾아가 이 문제를 두고 협의했다”며 “베트남에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은데, 이 일로 그르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조선일보> 기자의 입장은 4월27일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긴 기사 속에서 굳이 왜 베트남 현지에서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베트남 국제결혼은 불법이냐 아니냐는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면이 더 있었다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지언론 보도, 외교문제 비화 조짐





베트남 국제결혼이 아무리 ‘매매혼’ 형태를 띨지언정 한국의 농촌 총각과 베트남의 메콩강 처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난다. 아이로니컬한 점은, 베트남 여성 대부분이 농촌을 떠나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한국행을 결심하고, 한국 남성은 농촌에서 빠져나간 여성 때문에 베트남 맞선여행을 결심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사회적 약자들이 공통적으로 국제결혼을 탈출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김정우 나와우리 사무국장은 “맞선 과정의 매매혼적 요소는 그 과정에서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아직 법적·제도적으로 이들을 평등하게 맞을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고, 더욱 큰 문제는 여기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남성-베트남/여성’으로 위계화된 시선은 국제결혼에 이르러 ‘인간에 대한 예의’를 땅바닥 속으로 처박는다. 민족적 쇼비니즘과 남성주의가 결합한 시선은 결혼중개업체의 광고와 언론 보도에까지 스며들었다. 저개발국의 여성이 선진국의 남성을 만나 행복해진다는 현대판 신데렐라 신화. 이런 신화 속에서 만난 결혼은 평등할 수 없다. 새 인생을 출발하려는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을 불행에 빠뜨릴 뿐이다. <한겨레21>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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