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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의
개정 및 폐지에 앞장섭니다.
 
 
 
 


성매매금지법과 국가보안법 ... 2004-12-27 00:54:22    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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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wonja22)



몸을 팔 것인가 머리를 팔 것인가

좀 때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말은 해 보자.

1. 몸을 팔 것인가 머리를 팔 것인가

처음 「성매매금지법」이 제기되었을 때는 “음 좋은 생각이야”라고 생각했다. 성은, 인간은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자본주의 세상에서 매매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매매의 조건, 매매의 급박성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평생 동안 우리의 삶을 매매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몸은 팔아도 마음은 안 팔았다던가, 혹은 몸마저도 분리해서 노동력은 팔지만 신체는 팔지 않았다던가, 혹은 지식은 팔지언정 마음을 판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우스운 것은 저런 매매의 대상을 분류함으로써 어느 새인가 몸을 파는 것에도 등급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지식을 파는 것, 노동력을 파는 것, 신체를 파는 것, 그들 사이에 어떤 위계를 세우고 있다.

사실 신체를 파는 것보다야 지식을 파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훨씬 해악스러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부지불식간에 우리네 사회에서는 지식을 파는 행위를, 권장할만한 사항은 아니지만, 고급노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신체를 판매하는 자들의 문제는 그 해당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겠으나 권력과 부에 빌붙어 지식을 판매하는 자들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히려 지식을 팔아서 권력을 쥔 자들을 동경하는 게 항다반사이다. 이 나쁜, 어리석은 편견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가장 직접적인 것만 찾아보도록 하자.

간단히 생각해보자. 그 어느 누구든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의 진로를 판다해야 하는 순간순간마다 그 각각의 진로가 가지는 매매가치의 상대적 크기를 고민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어떤 걸 선택하느냐, 선택의 상대적 가짓수가 얼마나 많으냐, 혹은 그 선택을 에둘러 갈 수 있는 여유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몸을 팔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을 팔았다.

결국 팔고자 하는 매매의 대상을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의 가치판단이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자본주의 체제하에 내던져진 삶의 구체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몸을 팔 것인지 머리를 팔 것인지 결정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윤리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정도가 얼마나 될까? 공자가 말했던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인의와 도덕이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매의 대상으로 무엇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그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측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가진 자들의 근거 없는 오만이자 우월의식이고, 그야말로 전형적인 구별과 배제의 논리는 아닌가?

매매의 대상에 대한 차별적 등급을 부여하고, 매매되는 대상에 따라 윤리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삶의 조건에 대해 차별적인 등급을 매기는 것, 등급에 따라 분리와 배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 오만한 선민의식을 윤리의 이름을 내세워 법적 강제로 만들자고 하다니!!

물론 신체의 자유는 “자유”라는 개념 혹은 가치를 구성하는 가장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우리가 노예제를 반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 하에서 몸을 판매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라면 정작 따져야 할 것은 ‘신체의 매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 절차, 결과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인신에 대한 강압, 구속, 제약이 이루어지느냐 여부이다.

대개 성매매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 매매가 여성의 신체적 구속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판단 위에서 성매매 일반의 금지를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장소는 집창촌만이 아니라 노래방, 안마시술소, 호텔은 물론이고, 회사의 사무실,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발적인 성매매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이와 장소, 계급과 직위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아니 공공연히 드러나는 성매매가 문제가 아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성매매에는 더 많은 구속과 제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직장 내에서, 국회의원 의원 사무실에서, 고급요정에서 이뤄지는 강압에 의한 성 매매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물론 인신적 구속의 정도를 놓고 따지자면 집창촌에서 벌어지는 성매매가 그 중 가장 높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강압에 의한 인신적 구속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신적 구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한 「성매매금지법」의 폭력성이다. 판매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매겨지는 서열등급도 우스운 일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판매의 대상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변수는 판매자의 윤리적 잣대가 아니라 그가 처한 사람의 조건인 경우가 절대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신적 구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이 “삶의 조건”을 해결하는 방식이어야지 일방적으로 선택과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법적 금지를 통해서 이뤄질 것은 아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법적 금지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 혹은 이 법적 금지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효과이다.

성매매는 나쁜 것,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의 배후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매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주객관적 조건들을 분별하려고 하기보다는 사려 깊지 못한 (혹은 삶의 냉혹한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자들의) 거친 윤리적 가치판단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윤리적 가치판단을 법적인 강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이게 정말 문제이다. 윤리는 선택과 자기결정의 대상이지 법적인 강제의 대상이 아니다. 법은 도덕적 가치판단을 전체 구성원에게 강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동의에 기반한 최.소.한.의 강제를 명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게 근대 자유주의 법 정신의 핵심이다. 선택과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법적 강제조항은 최소화되면 될수록 좋다는 게 바로 자유주의 법 정신의 핵심이다. 이에 반해 국가가 개인과 사회의 선택을 그 어떤 이름으로든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든, 정의와 윤리를 내세우든) 대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의 실체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매매금지법」에서 가진 자들이 가지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매매대상에 따른 차별적인 가치판단과 법안 제정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국가가 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대신한다’는 파시즘의 논리를 본다면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

왜 「성매매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신적 구속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더 확실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법적 강제를 통해 제약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일까?

2. 반자유주의 파시즘의 첨단, 국가보안법

이것도 오래전 일이긴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부의 「국가보안법」 위헌 여부 판정에 대해 “법리 논쟁을 하기 보다는 전국민의 정서를 고려하자”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 발언이야말로 참으로 “혁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사족을 달자면, 노무현 정부의 철학 없음과 전략이나 정책의 부재를 보면서 내내 실망을 하다가도 노무현 대통령이 가끔씩 맥락 없이 제기하는 저런 혁명적 언사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이번 미국에서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그의 혁명적 언사처럼 말이다)

나야 그 당시 박사논문 때문에 다른 일 할 시간이 전혀 없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 발언을 계기로 많은 국내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의 법 정신의 근본을 들고 나와서 국가보안법은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합의의 문제이며, 그렇게 본다면 명백하게 위헌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여줄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국내의 한다 하는 자유주의자들 중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게다가 이 자칭 자유주의자들의 다수가 이번 「성매매금지법」에 대해 찬성 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자유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가보안법」을 합법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논자들의 의식구조와 「성매매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저에 깔린, 사회와 개인에 대한 관점,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국가가 대리하는 사회적 요구가 빚는 긴장관계를 바라보는 의식구조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단순명료한 삼단논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에 근거한 자유주의 정신을 견고하게 고수하지 않는다면 이 간단한 삼단논법의 각 구성항목을 정면에서 반박하기는 대단히 힘든 것도 사실이다.

① 한 사회의 기본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인의 자유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 있다.

②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이다. 남북한 군사적 분쟁을 비롯한 전면전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

③ 1항에 해당하는 헌법정신에 따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을 안정적으로 유지, 재생산하기 위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일체의 행위에 대해 그 해당 당사자의 인신적 자유를 구속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각 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③항의 경우를 놓고, “이롭게 하는 행위”의 정의를 상당히 제약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정의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자유에 대해 가하는 제약을 최소화 하거나 혹은 형법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국가보안법」이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행해왔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2번째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가 많은데, 그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비롯, 북한은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국지적 분쟁을 유발하거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발언을 해왔다.

게다가 북한의 현 상황을 볼 때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 북한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주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대안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하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최근 국방부 장관이 주적개념을 폐지, 혹은 국방부가 아닌 외교부가 규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데, 이 역시 혁명적인 발언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 발언을 뒷받침할 정치적 대안이 있는지 여부이며, 이 발언의 의도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와의 대적전선을 부각시키려는 책략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 여부이다.

만약 후자에서 비롯된 의도적 발언이라면, 그리고 이후 정치적 대안을 통해 구체적으로 물질화 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한 정파의 생존을 위해 역사적 책무를 팔아버렸다는 점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셈이다)

결국, 가장 쉽고도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지점은 ①항이 아닌가 싶다. ②, ③항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①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야말로 「국가보안법」, 혹은 국가질서 유지는 이름(삼청 교육대, 국기에 대한 경례 등등)으로 국민들을 세뇌시켜온 파시즘의 망령을 걷어낼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관습상 “국가 기본질서 유지”가 “개인의 자유”보다 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자유주의 법 정신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로 삼는 반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유라는 절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보조적, 하위종속적 가치를 가질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 정신에 동의한다면 기본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명시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제한적으로 적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헌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제한법인 「국가보안법」의 내용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그리고 이런 사항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에 현행 헌법 하에서 「국가보안법」은 법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위헌이 아닐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 헌법의 저 모호한 규정에 있다. 게다가 국민들의 잠재의식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법 감정(한국 전쟁 이후 태생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반공주의와 실체 없는 사회적 이익을 앞세워서 강요되는 집단 공익주의)을 뿌리째 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은 앞으로도 영원히, 가상 적국이 존재하는 한, 합헌의 틀 속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를 쟁점으로 제기해 놓은 공로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 그동안 우리 역사와 사회에 뿌려놓은 저 어두운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했던 보다 근본적인 접근,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근본동인인 국민적 법 감정의 변화, 자유와 민주에 대한 인식태도의 변화, 그리고 이것을 통한 사회적 역관계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으로의 대체 사이에 얼마만한 차이가 있을까?

그렇게 「형법」으로 대체한다면 과연 「국가보안법」은 폐지된 것일까? 우리 머리 속에 세뇌되어 있는 “국가기본질서의 망령”이 여전히 살아 있는데도?

3. 다시 한 번 더

다시 한 번, 「성매매금지법」의 문제는 바로 이런 거다. 「국가보안법」이 국가기본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듯이, 「성매매금지법」은 특정 부류의 윤리적 판단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고, 그 결과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진중권을 비롯한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성매매금지법을 주장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금지법」은 ‘사회적 보장을 통해 삶의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윤리적 가치판단을 앞장세워 교묘하게 면책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닐 뿐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wonja22.do?Redirect=Log&logNo=2000842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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