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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의
개정 및 폐지에 앞장섭니다.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에 대한 반론들.. 2005-12-30 12:42:29    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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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에 대한 반론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 궁금한가

한겨레 신문 5월 23일자의 대학 성폭력 언어 기사 중 백미(?)는 "몸을 팔면 된다"는 것이었다. 5월 27일자 "왜냐면"에 발언 당사자의 글이 실려 관심 있게 보았다. 발설자의 해명을 읽고 답답함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문제된 발언은 정확히 "교재를 살 돈이 모자라면 남자애들은 막노동판에 나가면 되고, 여자애들은 몸을 팔면 된다"이다.

몸을 판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몸을 판다. (인신매매; 법으로 금지되고 흔하지 않음) ㉡몸의 일부를 떼어 판다. (장기 매매, 매혈; 불법이지만 가끔 일어남. 특히 병원 화장실에 권유 글이 많이 있음) ㉢몸의 특정 부위, 즉 성기 내지 성적 서비스를 판다. (불법이지만 주위에서 흔히 봄) ㉣몸의 능력, 즉 노동력을 판다. (합법이고 그러기를 권유받고 자발적으로 그럼)

"여자애"들에게 권유된 몸 팜은 위의 어떤 것인가. 글 쓴 이가 실마리로 제공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몸을 판다. 누구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그러므로 몸을 팔면 된다는 충고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더구나 여성의 노동은 모두 매춘으로 평가된다."(그러므로 유별난 매춘을 시사한 것도 아니다.)

㉮에 함축된 몸 팜은 ㉣일텐데, 그것은 맞는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은 자본이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며 그 값으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그들을 임노동자라 한다. 농민과 자영업자는 제 노동력 뜯어 먹고 산다. 물론 자본가도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자본의 집적, 집중 과정에서 이윤이 줄어들고 (평균이윤율저하법칙), 중소자본은 몰락하여, 종국에는 무산대중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범주로서 자본가는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밖에 없지 않으며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자유, 재량을 향유한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고? 우리 모두 구조의 수인이라는 클리세를 말하는 건가? 우리 모두 몸 팔아 산다는 것은 레토릭으로서는 통용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연구 결과"는 아닌 것 같다. 현실의 막대한 불평등을 호도한다는 점에서 불순해보이기까지 하다.

㉯의 몸 팜은 ㉢인데 이것은 어떤가. 젊고 예쁜 여자만 뽑아 시집가기 전까지 쓰다 버리는 허접한 노동력 취급이 다반사라는 것은 뉴스거리도 못된다. 일부 여성 노동이 노골적으로 성적 매력을 파는 것이거나 (온갖 향락업소, 각종 서비스업) 성적 매력을 끼워 판다. ("사무실의 꽃", 나레이터) 그러나 그렇지 않은 많은 여성 노동이 있다고 한다면 내 안에 주입되어 당연시된 남성적 시선 탓인가? 자신이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 자신이 매춘을 하는지도 모르는 매춘 여성?! 새벽부터 수영장으로, 영어학원으로, 강의실로 동분서주하며 청년실업의 난관을 뚫는 양질의 노동력으로 성장하려는 많은 여성들은 매춘 지망자인가? 예컨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 받고 사장님 비위 맞추려 애쓰고, 손님 오면 커피 맛있게 타 맵시 있게 접대하는, 비서직에 요구되는 일을 성실히 해내려고 애쓰는 여비서는 매춘을 열심히 한 것인가? 비서 일의 서비스는 매춘부의 서비스와 같은가? 화면발에도 신경 쓰는 앵커우먼은 한복 입고 정육점 조명 아래 서 있는 매춘 여성과 다를 바 없나? 단지 비싸게 팔리고 헐값에 팔린다는 차이 이외에는 그들의 노동을 평가할 하등의 사회적, 도덕적, 심미적 기준이 없나? 모든 여성 노동이 매춘으로 평가된다는 소리는 폭력이다. 또다시 레토릭으로서는 무식하게나마 일말의 비판적 함축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아연 매춘을 별 도덕적 저항 없이 당연시("매춘도 합법적 직업으로 보호되어야 한다")하고 나아가 학생에게 권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생존방식인양 하는 논리로 연결될 때, 레토릭으로 뭉뚱그리려는 것 안에 얼마나 가증스런 남성중심적 성 관념이 깔려 있는지 드러난다.

글에서 제시된 두 옹호 논리 ㉮㉯는 모두 틀린 말이다. 혹 매춘을 권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보는 것은 너무 악의적인 오독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성-중립적으로 말해, 학생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돈 많은 부모가 없어 교재 살 돈이 없으면 모두 그러듯 몸을 팔아 돈 벌면 되고, 파는 상품의 내용은 각자 "개인이 결정"하도록! 이었다면, (헌법 담당 대학 강사의 몸 팜은 호스트 바 '선수'의 몸 팜과 같다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렇다면 또 다시 할 말이 있다. 왜 남자애에게는 몸 파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여자애에게는 그 친절을 베풀지 않는가. 편애는 선생으로서 가장 나쁜 일인데.

페미니즘적 지식을 활용하여 여자들에게 접근하여 성폭력, 성희롱을 감행했다는 모모 인사의 경우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웬 일일까. 여성해방이라. 우리가 꿈꾸는 여성 "해방"은 "노예인 암컷"을 시장으로 "해방"시켜 몸 파는 "존엄한" 인간으로, (성을) 파는 자와 사는 자의 "평등" 관계로 "승격"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여성 해방의 걸림돌인가? 그것이 궁금한가? 열심히 씩씩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여학생들을 화나게 만들어 그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공부해야 할 시간을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 지적하느라 허비하게 만든 "헌법담당 강사"이다. 여학생들이 좌절했을 것 같지는 않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김미영 / 홍익대 성과 사회 담당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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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먼저 5월27일치 '왜냐면'의 곽순근씨 글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몸을 파는 것이고 그것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마치 맞는 말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인간의 노동과 몸을 포함하여)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과 몸은 상품이 될 수 없다. 인간의 몸이 상품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며 인간의 노동 또한 상품의 될 수 없음은 1944년의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헌법학 강사인 필자는 헌법 강의를 통해 성노예제와 성차별을 부인하고 사람은 그 암수나 출생지역 및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 없이 모두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중심테마로 하여 수업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하면서 인간의 몸과 노동을 사고 파는 것을 당연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인간의 몸과 노동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헌법정신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우리의 헌법정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헌법 전문가인 그에게 묻고 싶다.


곽씨는 인간의 몸과 노동을 사고 파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위의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노동은 일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곽씨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엥겔스의 국가 고사론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발언이 성비하적 발언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으나 이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진정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노동의 소외의 극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자본주의하에서는 당연히 몸을 파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는 노동이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음을 필자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위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쳐야할 의무가 있는 필자가 오히려 이를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필자의 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또한 곽씨는 매춘도 합법적인 직업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본인은 남녀차별주의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도 일응 맞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들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매춘을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몸을 파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특히 여성의 매춘을 불법시 하여 방치하는 것이 그것을 합법화하여 그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오랜 고민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즉 매춘여성들의 복지와 보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곽씨의 글에서는 어떠한 부분에서도 매춘여성에 대한 고민이나 애정을 읽을 수 없다.

그리고 곽씨는 남성과 여성이 단지 성적 기능이 다를 뿐, 나머지는 어느 것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도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성적 기능이 다를 뿐 다른 것은 모두 다르므로 모든 부분에서 남녀는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즉 일도 똑같이 하여야 하고 더 나아가 군대로 가야한다. 이런 주장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오해이고 과민반응일까 헌법에서도 여성의 근로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를 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은 필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것과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할 것인데 그의 글에서는 이것을 느낄 수 없다.

곽씨는 자신의 발언이 성비하 발언인지와 강의 전체내용 중 일부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비이성적임을 묻고 있다. 그의 발언이 여성에게는 성비하 발언이 될 수 있으며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에 대한 비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그의 강의 전체를 듣지 않은 내가 그의 의도를 오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석진 강남구 역삼동,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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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노동은 곧 매춘이라고?


5월 27일치 <한겨레>에는 곽순근 강사의 글이 실렸다. 곽순근 강사는 '왜냐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예외없이 몸을 판다"고 했다. "여성의 노동은 모두 매춘으로 평가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곽순근 강사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는 "누가 여성 해방의 걸림돌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언뜻 보면 곽순근 강사는 굉장한 남녀 평등주의자로 보인다. '사람은 그 암수나 출생지역 및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 없이 모두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밝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곽순근 강사의 여러 발언 중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요소가 분명히 들어있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예외없이 몸을 판다'는 말 부터 짚고 넘어가자. 물론 이 말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것은 성을 상품화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가치는 '생명이 있는 존재'에서 '사회를 위해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는 넓은 의미로의 자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따라서 '몸을 판다'는 말의 의미는 '생산 주체에게 노동력이나 창의성, 숙련된 기술 등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노동을 매춘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여성의 매춘은 여성의 성을 상품화 하는 것이다. 곽순근 강사의 말대로 남녀의 성이 가지는 가치가 동등하다면, 어느 한 쪽의 성이 '상품화'되는 경우는 없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상품'은 희소가치에서부터 나왔고, 희소가치라는 것이 바로 불평등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노동은 곧 매춘'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여성은 자신의 성을 상품화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만약 곽순근 강사가 '그렇다'라고 한다면 곽순근 강사는 전적으로 여성의 지성과 인격을 무시하고 여성을 '인적 자원'이 아닌 '성적 노예로' 취급해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노동을 매춘으로 보는 시각이 한 사람의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남녀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권순근 강사는 어째서 한 쪽의 성을 일방적으로 비하하는 잘못되고 불평등한 통념을 바로잡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권순근 강사는 강의 중에 "돈이 없는 여학생들은 몸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서 공부하라"고 말함으로서, 은연중에 그 잘못된 통념을 옹호하고 당연한 듯이 내세우기까지 했다.

곽순근 강사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여성 해방의 걸림돌이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남민욱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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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답고’, ‘지성인 다운’ 모습 아니다


지난 22일자에 소개된 연세대 총여학생회의 ‘교수 성폭력 토론회’ 소식과 이에 대해 곽순근 교수가 26일자에 기고한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를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곽 교수의 강의나 이후에 있었던 토론회를 접하지 않은 상황에서 곽 교수의 발언이 성차별적이냐 아니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단정적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사만을 토대로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우선 연세대 총여학생회의 토론회를 통한 문제제기는 곽 교수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떠나서 ‘학생 답고’, 또한 ‘지성인 다운’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은 단순히 강의를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객체라고 보지 않고, 대학이 가지고 있는 자유가 강의실이나 학교 담장 안에서만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학생들이 제기한 남성교수의 성폭력 문제는 잘못된 바가 전혀 없다. 한편 곽 교수는 이 토론회에서 문제가 된 자신의 발언이 학생들이 제기한 것처럼 성차별적인 것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임을 주장한다. 나는 곽 교수의 이같은 반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또한 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곽 교수의 발언이 잘못 이해되었다면, 이것이 언론을 통해 확대되어 학자로서의 명예를 크게 훼손당하는 상황까지 가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학자의 지성에 비길 수 없는 풋내기 학생들의 오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문제제기는 아직도 대학사회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성차별에 관한 문제의식의 수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성인들이 모였다는 대학에서조차 ‘눈에 보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대학사회의 남성은 교수이든 학생이든 아직까지 지성인 답지 않게 무감각한 것이 현실이다. 무감각하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성차별을 일삼지 않더라도, 또는 전혀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지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의식과 그에 따르는 행위판단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가운데 이런 의미들을 찾는 것이므로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곽 교수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학생들에게 학문적 믿음을 동시에 전해주지 못하여 결국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학자로서의 양심을 오해받은 한 선배이자 스승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성의 이름으로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라고 반문하는 곽 교수의 글은 차라리 인간해방의 역사를, 그 신념을 느껴 볼 겨를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과 그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하나의 관념으로만 헛도는 지성보다 실천하는 지성이 본래의 지성에 가깝다면 사회적 문제제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학생들은 분명 지성인에 가깝다. 무차별적 비난에 시달릴 것을 알면서도 권위의 강단이 아닌 토론의 광장으로 나서서 대화하고자 하는 곽 교수와 같은 교육자 역시 지성인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위치에서건 지성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높은 지성’이 아니라 그저 ‘자기반성’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같이 반성하자는 식의 기만적인 반성은 아니다. 지적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개인적 삶의 안락함과 안일함에서 스스로 사회적 실천의 힘든 발걸음을 얼마나 내딛었는가 하는 실천하는 지성인의 진지한 자기반성 말이다.


김수권 / 인천시 계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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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팔아서 공부하라'는 명백한 언어폭력


곽순근씨는 5월 27일자 '왜냐면'에서 "돈이 없는 여학생들은 몸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서 공부하라."는 자신의 수업 중 발언이 성폭력적 언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명백한 언어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곽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몸을 팔기에, 여학생들에게 '몸을 팔아서라도'라는 발언을 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몸을 판다. 그러나 여기서 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性이고, 하나는 노동력이다. 곽씨의 말에서 몸은 性을 의미한다. 여기서, '性을 파는' 이들은 얼마의 돈을 받고 자신의 몸에 대한 성적 지배권을 완전히 넘기기 때문에 노동력을 파는 것과는 다르다. '성을 팔고' 돈을 못 받을 경우 자신이 강간(성폭행)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러나 계약을 맺고 누군가를 구타한 후 돈을 줬다고 그것을 폭행이 아니라 볼 수 없듯이, 돈의 지불 여부에 관계없이 성매매는 성폭행을 낳는다. 따라서 성행위를 위해 몸을 사는 것은 엄연한 성폭행이며, 몸을 파는 것은 곧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면 '몸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라'는 곽씨의 발언은 '성폭행을 당해서라도 책을 사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포를 안겨주는 말인가. 따라서 그의 말은 명백한 언어 폭력이었다.



둘째로 곽씨는 '남성과 여성은 성적 기능이 다를 뿐, 나머지는 어느 것도 다르지 않다'며, '여성에게 다른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곧 '여성비하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자신은 중립적 의미로 '몸을 팔아라'는 말을 했는데, 일부 여학생들이 과민반응 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거꾸로 여학생들이 더 민감하게 문제점을 짚어냈다는 사실이,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여학생들이 민감했던 까닭은 성매매에서 '몸을 팔고' 성폭행을 당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적 기능' 차이가 엄청난 차별을 양산하고 있다. 이 차별 중 하나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일이다. 성매매는 물론이고, 광고에 나타나는 여성의 몸, 미스코리아 대회 등(이런 예는 당신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은 아직도 여성의 몸이 남성의 시선에 맞춰 만들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순진한 곽씨의 믿음과는 달리, 몸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을 안고 있는 매우 정치적인 영역이며, '몸을 팔아라'는 말은 여성의 몸을 '판매 대상'으로 다시 한 번 대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곽씨의 발언이 언어 폭력일 ! 뿐 아니라 언어 성폭력이라 생각한다.

셋째로 곽씨는 학생들이 강의 중 일부 발언을 문제삼아 자신의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밖에 알린 사람은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일 것이다. 곽씨 강의의 전체 맥락 속에서 학생들이 문제점을 느끼고,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경우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곽씨는 이 부분에서 학생들의 지성을 의심했는데,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해석도 강의의 일부다. 학생들의 해석이 자신이 의도한 바와 다르다고 몰지성적이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에게 강의의 자유가 있다면, 학생들에게도 해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비판은 근거가 있다.

적어도 그는 '몸을 판다'는 발언이, 자신의 몸이 팔릴 수 있는 '상품' 혹은 '대상'임을 생활 속에서 항상 느끼는 여성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것인가에 대해 고려할 만큼의 신중함은 보여야 했다. 자신의 발언에 성적 불쾌감 혹은 공포감을 느낀 학생들을 몰지성적이거나 性에 대해 덜 계몽된 인간처럼 치부하기 전에,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곽씨가 글 마지막에 던진 질문인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임이혜림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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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순근씨의 글을 잘 보았다.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지면을 통해 떳떳이 해명하려는 자세는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곽순근씨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차있기에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곽순근씨는 성노예제도를 예로 들며 자신의 헌법강의는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성차별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다. 그리고 다음절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몸을 판다고 주장하고 있다. 곽순근씨가 말하는 몸이 노동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말 역시 옳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이다. 여성의 노동은 모두 매춘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곽순근씨의 주장은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한것이며 그 점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곽순근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땅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은 사무실에 앉아 매춘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매춘부라는 이야기인가?

또한 ‘성은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사회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갑자기 앞뒤 문맥과 논리적 연결성이 약한 간통제 폐지문제등을 들어 성해방 담론의 여러 소재들을 난데없이 꺼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연결성이 전혀 없으며 여학생회가 문제삼은것은 곽순근씨의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언행과 언어적 폭력성에 관한것이지 성해방 담론과는 무관한것이며 곽순근씨가 성해방론적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 아님을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마치 자신이 성해방을 주장하다 여학생회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인냥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묻고 싶다.

또한 사람을 암수로 구분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어떻게 수업시간에 함께 옷을 벗어야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지도 도저히 납득할 길이 없다. 옷을 벗으면 사람의 생물학적 차이마저 없어지는가? 또한 여성에게만 강조되는 옷이 강요된 관습이므로 벗어야 했다면 그 자리의 여학생들은 모두 강요된 유니폼이라도 입고 있었단 것인가? 아니면 옷을 입기 싫은데 억지로 입고 있었다는 것인가?

곽순근씨의 글을 보면 전체적으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으며 자기변명에 급급한 느낌이다. 또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여러 당위론적 주장들도 전혀 구체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

곽순근씨는 제목에서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우선 자신에게 먼저 진지하게 던져 주기 바란다. 어째서 책값이 모자라는 여학생들은 몸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야하는것인가? 그 말속에 이미 여성은 몸밖에 내세울것이 없다는 여성 비하가 스며들어 있지 않은가? 또한 여학생들에게 매춘을 강요하거나 성적 유치심을 유발하는 언어적 폭력성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혹시 곽순근씨가 그저 매춘의 합법화나 성해방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런식의 폭력적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문제제기와 학생들과의 의견교류가 충분히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곽순근씨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기본 전제조건일 것이다.


홍성현 /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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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법률]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0 0
69   “美서 성매매 한국여성 최소 5000명” 0 0
68   憲裁 "성매매 장소 제공 처벌은 합헌" 0 0
67   상담자 유흥주점 등 54.3% 집창촌 28.6% 0 0
66   "성 파는 여성보다 교육 못받은 아이들이 더 문제" 0 0
65   獨종교계, 월드컵 기간 강제 매춘여성 보호 0 0
64   영국, 소규모 매춘업소 합법화하기로 0 0
63   성매매피해여성만의 비범죄화에 대한 견해(토론마당) 0 0
  ‘누가 여성해방의 걸림돌인가’에 대한 반론들..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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