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HUMANRIGHTS | NEWS | 한국인권뉴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HOME > 한국인권뉴스 > 핫이슈
기사제목 기사내용
성매매특별법의
개정 및 폐지에 앞장섭니다.
 
 
 
 


[앵콜 마광수] 『不安』 : 영상적 리얼리즘의 창출을 위하여 2024·04·28 03:09

마광수 다시보기(편집부)


  『불안』은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에 이은 내 네 번 째 장편소설이다. 계간지 리뷰 에 95년 겨울호부터 96년 가을호까지 연재한 후, 다시 꼼꼼하게 다듬고 고쳤다.

  『즐거운 사라』로 ‘마녀사냥’을 당한 후 처음 쓰는 소설이라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나는 뜬금없이 당한 ‘모럴 테러리즘’을 통해 문학이 권력의 그물망 안에 꽁꽁 갇혀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고, 한국 지성계의 야비함과 비속함, 그리고 옹졸함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유로운 창작은 물론 자유로운 상상조차 영원한 신기루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이란 제목은 그러한 심경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그런 우울한 상황에서 나로서는 안간힘 쓰며 생산해본 작품이다. 탐미주의적 입장에서 묘사적 리얼리즘의 회복을 목표로, 새로운 형식의 영상미학적 소설을 시도해 보았다. 전에도 늘 견지해왔던 생각이지만, 유미적 판타지의 회복이야말로 관념과 설교 위주의 우리나라 문학에 한줄기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식 결여와 비합리적이고 수구적인 봉건윤리, 그리고 현학적 엄숙주의는 한 작가의 창의력을 고갈시킴은 물론 한 나라의 전체의 문화를 침체상태에 빠트린다는 사실을 나는 ‘즐거운 사라 사건’을 통해 절감했다.

정치 과잉으로 세태가 점점 더 살벌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노장사상(老莊思想)에 바탕한 양주(楊朱)*식 유미주의와 실용적 쾌락주의라는 게 내 생각이다. 구두선으로 외쳐지는 ‘도덕’이나 ‘정의’는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다.

  도덕이나 정의는 인간의 질투심 · 적개심에 그 뿌리를 두고, 흑백논리로 선과 악을 가를 때 동원되는 잔인한 덕목이기 쉽다. 지나치게 도덕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여 관능적 쾌락에 탐닉할까봐 항상 전전긍긍 감시의 눈길을 보내며 중상과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늘 ‘과거’에만 집착하는 수구적 도덕주의자들의 살벌한 권위주의가, 우리 사회를 숨막히게 하고 사람들을 이중적 위선으로 몰아가고 있다.

  관능적 쾌락을 철저히 배격했던 스파르타가 비할 데 없이 잔인하고 비겁한 병영국가, 후세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한 하잘 것 없는 사회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중국에서도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는 결국 지배 엘리트 위주의 문화독재주의나 강압적 전체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가(道家)는 그것을 막기 위해 야(野)한 정신과 허무주의에 바탕한 자유분방한 개성과 관능적 쾌락을 내세웠던 것이다.

자유와 억압과 개성의 말살은 권위주의적 독재권력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도덕문화가 억압적일 때도 자유는 질식되고 만다. 정치투쟁이 격화되고 관념우월주의가 팽배할 때 인성(人性)의 황폐 · 인권 경시 · 개성 억압의 풍조가 생겨나는데, 이럴 때 유미주의는 근본적 해열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불안』은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중점을 두고서 씌어진 작품이다. 말하자면 형식미학적 실험을 시도하여, 스토리나 주제의식 중심의 한국 소설에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나는 독자에게 마치 컬러로 된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독자가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부수며 ‘감상(感傷)’과 ‘퇴폐’의 몽롱한 꿈속에 당당하게 잠겨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인 것 같다’ ‘.....일지도 모른다’ 등   추정형의 문장을 많이 사용한 것도 안개낀 듯 몽롱한 영상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소설이 영상매체에 밀려 위기를 겪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독자성과 가치는 영원하리라고 본다.

소설은 세밀한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지만, 영화는 배우의 얼굴이나 풍경 등이 그대로 현시(現示)되기 때문에 ‘상상적 참여’에 제한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집요한 묘사를 시도한 것은, 영화를 닮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활보다 더 매력적인 영상미를 문장미로 창조해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또 이 작품에서 회화적인 기법을 원용해 보려고 애썼다. 나는 미술과 문학 중 어느 것을 전공으로 택할까 몹시 망설였었고,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에는 미술에 대한 선망과 향수가 늘 자리잡고 있었다. 회화(특히 유화)에는 ‘한 소재에 대한 반복적인 집착’과 ‘거듭거듭 덧칠하기’, 그리고 ‘순수한 형식미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이 ‘바라보기’의 심리를 바탕에 깔고 여주인공의 외양이나 주변 풍경 묘사를 지루하리만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런 미술적 효과를 의도해서이다. 묘사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소설미학적 담론이나 사변적 서술 역시 형식적 파격이나 회화적 여백의 효과를 노린 것일 뿐, 교훈적 메시지의 전달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문학에서도 반드시 ‘반복적 집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 작품에서 ‘긴 손톱’을 위주로 페티시즘(fetishism)의 이미지를 거듭 변주(變奏)하며 형식실험을 해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작가든 화가든 평생 무엇인가를 쫓는 ‘광적인 집착’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허용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상적 일탈(逸脫)에 바탕을 둔 독창적인 광기가 ‘모난 돌이 정 맞는’ 식으로 매도되는 풍토에서는 창조적 생산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내가 시로 문학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나는 이 소설에서 현실과 상상이 혼합된 시적 분위기를 유지시켜 보려고 애썼다. 이 작품의 착상 역시 내 다른 산문 작품들과 마찬가지고 먼저 씌어진 시를 갖고서 이루어졌다.

『불안』엔 네 편의 시가 삽입돼 있는데, 이 소설을 쓰기 이전에 창작된 것들이다. 실린 순서로 제목을 소개해 보면, 〈서울의 우울〉 〈늙어가는 노래〉 〈삶의 슬픔〉 〈모든 것이 불안하다〉이다. 이 네 편의 시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기본적 이미지 역할을 하며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줬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10월

馬 光 洙
  
□ '작가의 말' 에서  

*양주 (사상가)
양주(楊朱)는 중국 전국 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자(字)는 자거(子居). 위(衛) 사람이다. 개인주의 사상인 위아설(자애설)을 설하였다.
양주(楊朱)는 하나의 생명이야말로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여 생활의 일체는 이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주체는 '나(我)'다. 그 '나'를 소중하게 하는 바로 그것이 최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자(老子)는 무아를 말하여 무아 속에 개인의 존속을 도모하려고 하였으나 양주는 무엇이든 나를 위해서만 해야 한다는 위아(爲我)설을 노골로 설하였다. 그것은 극단인 개인주의이기도 하였으므로 묵자(墨子)가 말하는 '겸애'의 생각과 상이해 대비된다.

[한국인권뉴스]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열띤 네티즌들의 토론장
 
성노동 개념 / better health
뉴욕주, 성노동 비범죄화 추진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 하청지회 서울본사 12층 사장실...
박근혜 "경동맥 잘린 것도 아닌데"
 
자료마당
 
조선에서의 일본군‘위안부’동원: 소개업자・ 접객...
나치 독일의 강제노동과 보상 문제
한타련 거제 주민설명회 수순
성특법이 성범죄, HIV / AIDS 공화국으로
 
한국인권뉴스 회원의 글
 
박근혜 정부의 '한일위안부 합의' 사실상 파기한 문재인
징용배상판결 해법은? / 주익종
[쟁점토론]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누가 통일을 원...
[8.15 전국노동자대회] 반통일 윤석열의 대결정책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