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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고종학의 고생담 2023·11·28 08:25

[편집부]

화성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고종학의 고생담  

소개할 사례는 시베리아-일본 시즈오까로 징용을 다녀온 고종학이란 분의 것이다.  

고종학은 19세에 징용에 나갔는데,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은 형님 두 분이 계셨으나, 큰 형님은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둘째 형님은 독립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직이었던 고종학이 징용 대상이 되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마을에서도 돈이 좀 있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면이나 구장에게 돈을 좀 멕이고 대상에서 빠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종학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전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는데, 당시 면에서는 동네마다 야학을 세워 무학자들에게 글을 지도했고, 동네에서는 저녁 8~9시 경 야학을 개최했다.

이 야학은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총독이 주도한 농촌진흥운동의 핵심 사업 중의 하나였고,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농민들에게 조선어와 일본어를 가르쳤다.
고종학의 경우에는 약 3년간 야학에서 조선글을 공부했고, 일본글은 시간이 부족해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우가키의 농촌진흥운동을 카피한 것이다.)

징용자들은 부산까지 조선인 면직원의 인솔 하에 갔으며, 부산항에서 징용으로 가서 일하게 될 회사 소속 직원(조선인)이 이들을 인계받아 배에 태워졌다.


*

[ 진술 내용 ]

질문) 이동하는 동안에 그 데리고 가던 사람들이 대우라든가 잘 해주던가요? 식사라든가.
고종학) 어(예). 그때 나갈 때는 뭐, 그냥 그대로.

질문)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이동하는 과정에서?
고종학) 예.

- 첫번째 작업장이 있던 사할린의 날씨가 너무 추워서 못 견디겠다며

질문) 다른 데로 보내달라는 얘기를 누가 주로 주도가 돼서 얘기가 나왔어요?
고종학) 그 우리가 인제 단합이 돼서 그런 거지. 여기서는 추워서 못살겠으니까 더운 곳으로 보내다오. 죽어도 더운데 가서 죽어야지 여기 추워서 어떻게 사느냐 그런거지.

질문) 그 비행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그렇게 요구를 하고 그랬어요?
고종학) 어.

질문) 뭐 어떻게 큰 소리가 나고 하여튼 그런 게 있었나요?
고종학) 그렇지.

질문) 그래도 폭력행사 같은 건 없었나 봐요?
고종학) 어.

질문) 생필품이라든가 양말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다 지급이 됐어요?
고종학) 어. 거기서 다 줘.

질문) 충분히 나왔어요?
고종학) 어. 근데 거기서 나올 때는 이 옷을 다 반납하고 나와.

질문) 그러면 처음에 갈 때 임금이 얼마라는 얘기는 했었어요?
고종학) 어.

질문) 얼마래요?
고종학) 30원

질문) 어떻게 받았어요?
고종학) 거기서 월급날이면 나와. 한달 되면. (중략) 고향으로 송금할 사람은 송금해라. 그런데 고향으로 얼마 부쳐준다 하면 월급에서 이제 부쳐주지. 나는 거 가서 석(3)달치만 부치고서 나올 적에 그냥(가져왔어)

질문) 받아서 뭘 하셨어요?
고종학) 받아서 그냥 집으로 가져왔지.

질문) 그거 왜 송금 안하시고 직접 받을 생각을 하셨어요?
고종학) 집에 와서 쓸라고.

질문) 한 달에 30원씩 다 받기는 하셨어요? 나올 때? 못 받고 이런 건 없었어요?
고종학) 다 받았어.

질문) 그러면 아파서 하루 못 나간다든가 이러면 임금에서 공제돼요?
고종학) 예.

질문) 그면 주변에 같이 일하던 분들 중에 다치거나 죽거나 한 사람도 있었어요?
고종학) 저기 뭐 죽거나 한 사람은 없고 다쳐가지고 병원에 가 좀 있다가 나온 사람도 있고.

질문) 근처에 병원이나 그런 시설들이 어디에 갖추어져 있어요?
고종학) 어. 거기서 가깝게.

질문) 감독하고 그러는 사람이 일본인이에요?
고종학) 일본인도 있고 한국 사람도 있고. 여기서 가는 도중에 그 뭐여 공부를 좀 한 사람은 반장으로 뽑혀 나가고 그러지.

질문) 사할린 비행장에서는 잘 먹었다고요?
고종학) 어. 잘 먹었어.

질문) 여가 시간이나 쉬는 시간도 좀 있었어요?
고종학) 일주일에 한번씩 쉬는 거지.

질문) 그럼 임금을 다 받았고 일본에서 올 때 가지고 나오셨다는 말씀이시죠?
고종학) 예.

질문) 얼마나 저축해서 가지고 나오셨어요?
고종학) 돈 팔백(800)원. 한국에 나오니까 쌀 한말에 십원이었어. 10원.

질문) 그럼 800원이면 굉장히 많은 돈인 거네요?
고종학) 어.


사할린에서 추위를 구실로 단합하여 항의한 결과 일본 본토의 시즈오까로 이동 배치된 후

질문) 비행장 근처에 술집이라든가 여자집이라든가 간혹 가는 사람들이 있던가요?
고종학) 그때 뭐여 유곽이라고 있지. 하루 저녁 놀고 오면 5원 주는 거여. 일요일 날이면 걸어서 갔다 오고 그래.

질문) 유곽에 그럼 조선인들, 조선인 여성들이 있다든가요?
고종학) 예, 한국인들. 유곽에 갈 사람들 있느냐. 뽑으면 그 사람들 표 해주면 가는 거여.

질문) 갈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중에서 뽑기도 하고 그래요?
고종학) 어.

질문) 고향에 연락이나 이런 건 원활하게 했어요?
고종학) 어. 연락은 했지. 편지 왕래하고.

질문) (시즈오까)비행장에 있을 때 사고,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고종학) 사망하는 사람들 있지.

질문) 죽으면 어떻게 하던가요?
고종학) 죽으면 전부 화장을 해서 화장터에서 죄(모두) 처리하는 거지.

질문) 유족한테 보내는 거라든가 이런 건 제대로 하던가요?
고종학) 어.

질문) 그래서 어쨌든 시즈오까에서 어르신은 다치거나 이런 적은 없으신 거죠?
고종학) 어.

질문) 우정(면), 장안면 사람들은 희생되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신거죠?
고종학) 어.


당시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질문) 당시 농사에 대하여
고종학) 그때는 무조건 남의 땅을 (소작)하면 이렇게 반씩 노놔 먹는 거여. 농사 지어가지고. 내가 농사지으면 땅 임자하고 반씩 이렇게 노놔 먹는 거여.  
.. 그때는 농사짓기 어려웠어요. 왜냐면 논두렁에 피 하나만 있어도 벌금을 받아가요.

질문) 자기 논에 피가 있어도요?
고종학) 예. 그래 깨끗하게 해 먹으라는 뜻이지.

질문) 그러면 피 같은 거 생기면 바로바로 가서 뽑고 해야겠네요?
고종학) 예, 그러고 이 집안에도 지저분하게 하지 말고 깨끗하게 살라고 청결조사라고 있어요. 청결조사.

질문) 아 그런 것도 막 강제로 지시하고 그러나 봐요?
고종학) 예

질문) 그런 걸 조사하러 나와요?
고종학) 나오죠. 그 전에는 나무만 땠어요. 나무. 그래서 아궁이가 있으면 아궁이 뚜껑도 해 덮으라고 하고 굴뚝도 저 연기 나가는 거 노깡을 채우라고 그러고 그 때는 심했어요.

질문) 그런 거는 사실 필요한 일이잖아요.
고종학) 그렇죠. 그거는 참 일본 사람들이 잘한 거여. 지시를 잘 내린거여.
밤에는 도둑 맞지 말라고 순경을 돌아요. 야경을 돈다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야경을 돌았다)

질문) (동네에서) 야학이 열리면 나이 많은 사람도 배우러 가고 그랬겠네요?
고종학) 예. 어우, 그때는 환갑 진갑 지난 노인네들 죄 배우라고 저기 시키는거여.

질문) 그래서 그게 이제 생활이 내면화 됐어요? 그 후에도 생활습관이 계속 갔어요? 그런 식으로 한 게?
고종학) 어, 8.15 해방되고도 그거는 노냥 했다고요.


다시 징용에 대해서

고종학) 징용 대상자를 뽑을 때, 아주 혼자라서(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혼자 밖에 없어서) 일할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은 못 가고 그 형제가 있으면 (대신) 가야지.
구장한테 돈을 멕이면 아닌 말로 참 빠질 수도 있지.

질문) (시즈오까에서) 굴을 뚫는 작업이 굉장히 힘든 작업이겠네요?
고종학) 그게 젤 어려운 거여. 나같이 약한 사람은 못했지만은, 센 사람은 거기 일을 많이 했어. 월급도 좀 낫게(많이) 주고 또 밤에 일하면 낮에 자고 그래요.

질문) 그러면 일본인(민간인 주민)들하고 접촉이 있었겠네요?
고종학) 예, 일본 사람들하고 접촉이 있죠.

질문) 그럼 일본 사람들하고 그렇게 접촉이 있을 때면 관계들이 어땠어요?
고종학) 뭐 그 사람들하고 한국 사람들하고 별 다른 건 없어요. 한국 사람이 거기 들어가서 전쟁 저기를 도와주러 들어갔는데 우리에 대해서 조금도 뒤탈이 없지.

질문) 월급 받아가지고 하나도 안썼어요? 그럼 옷가지라든가 수건이라든가 이런 건 다 제대로 나오나봐요? 달리 돈 쓸 일이 없어요?
고종학) 안 썼어. 하나도 안쓰고 꼬박꼬박 모아서 나왔어.

질문) 그래가지고 그 800원을 돌아와서 어디에 쓰셨어요?
고종학) (조선에 돌아와서) 우리 큰형님 병 간호하느라고 살릴라고 그 좋다는 약을 사다주고 별짓을 다해도 그냥 그 돈 다 없어지니까 돌아갔어. 그 병 간호하느라고 다 썼어. 우리 큰형이 난봉쟁이여. 그냥 술만 먹고 술집에 가서 저거하고 술집 갈보하고 살림나고 별짓을 다 했어. 그렇게 그냥 저기하다가.

질문) 제가 듣기로는 일본에서 제대로 임금을 안 줘가지고 임금을 못 받아온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고종학) 음, 우리하고 같이 간 사람들은 다 일비 받아가지고 나왔어요. 유곽에 다니는 사람들은 돈을 썼지. 돈 한 푼도 못 가져온 사람 있어. 돈을 받긴 받아도, 나는 절대 그런데 댕기는 것도 모르고 아주 그냥 안썼지.

질문) 그 유곽은 누가 운영해요?
고종학) 한국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질문) 근데 어르신 징용 갈 때 큰형님이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더 나이가 많은데?
고종학) 아니지, 그 집안에 일을 할 사람은 남는 거여. 일할 사람 다 가면 그 집일(생계)는 누가 저기 해여. 마누라든지 어머니를 누가 저기를 해, 그러니까 혼자인 사람은 안가지.(생계를 책임진 사람은 안간다는 뜻) 지금 말하자면 그 사람이 호주니까 가면 안된다 그런 거.

질문) 그럼 어르신은 징용 갔다 온 기간이 어떤 게 나한테 피해가 되었다 그런 게 있을 거 아녜요?
고종학) 피해는 뭐 그 지금 그 때는 일본을 저기 위해서 간 거니까 이런 거를 못 따지지.

질문) 그러면 노무관리라든가 이런 건 어떻든가요? 사람들 관리를 어떤 방식으로? 굉장히 폭력적이라든가 그래도 나름대로 잘했다든가 이런 게..
고종학)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뭐 춥지 않게 저거하고 중대장부터 대대장한테 지시가 내려와요. 관리 잘해주라고.

질문) 일이 굉장히 고되지는 않았어요?
고종학) 뭐 그냥 노냥 곡괭이 들고 그저 돌 깨뜨리고 일하는 거니까 뭐 근심할 틈이 없어. 해나 지면 들어가서 먹고 잠이나 자는 거지 이 생각뿐이지 뭐 딴 생각이 없어.

질문) 그러면 (인근 지역에서) 징용가서 막 크게 다치거나 이런 사람이 없었고, 그 담에 그 4명 같이 간 사람들은 자기 임금을 다 모아서 그냥 잘 가지고 들어온 거네요?
고종학) 그 사람들은 돈 하나도 안 가져왔어. 나만 가지고 왔지.

질문) 그 사람들은 뭐에 그렇게 돈을 썼어요?
고종학) 그 사람들은 다 썼지.

질문) (작업장에서) 반장이나 소대장 중대장 전부 조선 사람이에요? 일본 사람은 없어요?
고종학) 일본 사람은 없어. 전부 한국 사람이지.

질문) 작업을 지시하거나 작업을 분담하는 사람들이 전부 조선 사람이 했었다는 거죠? 그러면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혹하게 했거나 심하게 사람들을 다루거나 뭐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고종학) 아니 뭐 별로 그런 거 없어.

질문) 할아버지 그 같이 가신 분 4분은 징용 가서 받은 임을 하나도 못 가져왔다고 하셨는데, 그 굉장히 큰 800원이나 들고 온 어떤 비결이 있어요?
고종학) 나는 쓰지를 않았어요.

질문) 하하, 다른 분들은 30원을 받으면 유곽을 가건 어딜 가건 쓸 데가 있다는 거잖아요. 하나도 못 가져왔다는 거는, 그런거죠?
고종학) 어(예).  

*

징용에 관련된 부분만 일부 발췌해서 살펴보았다.

지역으로 대상 인원이 할당되면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건강이 안좋거나 뇌물을 빽을 쓴 사람들은 빠질 수 있었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 즉 그 가정의 생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자가 주로 징용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지침을 내린 것은 상부의 일본인 관리였을 것이나, 이걸 실행한 것은 조선인 하급관리들이었다. (그러니까 강제로 패서 끌고 갔다고 해도 우리 민족끼리 지지고 볶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현지에서의 대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라고 들린다.
생필품 등의 보급도 괜찮았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왔다. 희망자에 한해서 고향으로 송금을 해주었다.
구술자는 17개월의 징용 생활을 했는데, 월 30원이라면 다 모아도 510원 밖에 안되는데, 본인은 800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모은 돈 외에 퇴직금을 정산해 받았을 것으로 색각된다. (구술자 본인은 무학이다.)

강제 납치와 노예 노동이 아닌, 관이 주도적으로 빈농들을 해외 취업에 알선한 모양새에 가깝다.


▦ 원 출처: 화성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구술자료집 3
▦ 출처: 네이버 블로그 ‘백년역사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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