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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강제동원구술기록집 『조선이라는 우리나라가 있었구나』 2023·09·07 23:04

[편집부]

강제동원구술기록집 『조선이라는 우리나라가 있었구나』에서 손영권 씨의 사례를 본다.  

손영권 (창씨명 평천우조平川宇助), 1924년생.
1942년 가을 나고야로 동원 (18세)
1945년 해방 후 귀국


다음은 면담자(녹취) 엄지혜와 손영권 씨의 질의응답이다.  

*

문) 어떻게 징용가게 되셨어요?

답) 서울 경기중학교 소사로 있다가, 일본의 제1차 징병이 있었어요. 그래서 징병검사에서 제1보충병 판정을 받았어요. 근데 경기중학 교장이 ‘시마다’라고 있었는데 그 교장이 나를 일본으로 보내준 거죠. 그래서 일본 가서 나고야 육군 조병창에서 일하다가 해방돼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그 때는 젊은 사람이 필요해서 일본 놈이 나를 끌어갔다 그래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선출해서 보낸 것이죠.

(*주: 1942년에는 징병제가 실시되지 않았고, 시기상 증언자는 지원병 모집에 지원했으나 탈락했으며, 경기중학 교장의 추천장을 받아 징용에 자원하여 뽑힌 것으로 보인다.)


문) 그러니까 ‘시마다’ 교장이 어르신을 선출해서 일본으로 보냈다는 것인가요?

답) 그렇지 나를 특별히 뽑아서 보낸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니까 일본 가면 써 먹겠다 싶어서 일본으로 보낸 거예요. 육군 조병창, 군사시설로 보낸 거죠. 그래 거기 가서 일하다 해방돼서 나왔어요.


문) 가기 전에 훈련 같은 건 안 받았어요?

답)그 때는 사령관 지시대로 훈련도 받고, 정신교육도 받고, 징용 갈 준비도 했죠.


문) 경기중학 소사 일도 하셨을 텐데 매일 받았어요?

답) 주기적으로 한 달에 몇 번씩 받았죠. 그리고 그 때는 경기중학에 있을 때가 아니고 종로 3가에서 남의 집 일 할 때였어요.


문) 일본어도 배우셨어요?

답) 일본말은 내 자신이 아주 일본사람이 다 되다시피 했으니까 잘했죠. 100% 하다시피 했는데..


문) 누가 인솔해서 갔어요?

답) 앞잡이라고 할까, 한국인 관계자들이 인솔해서 갔던 것 같아요.


문) 총이나 칼 찬 군인이나 헌병은 없었어요?

답) 그런 거는 없었지요.


문) 가실 때 불편하게 가셨어요? 겁을 주기 위해 기합 같은 것을 준다거나..

답) 그런 것은 없었어요.


문) 시모노세키에 도착해서 나고야까지는 어떻게 가셨어요?

답) 기차 타고 갔죠.


문) 하루 생활을 좀 말씀해주세요.

답) 아침 7시 반이나 8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6시 반이나 7시 반에 퇴근해 숙소로 돌아와 목욕했어요. 뭐 공장에서도 목욕은 할 수 있었어요.


문) 식사는 세끼가 다 제공됐어요?

답) 공장에서는 먹어본 적은 없고, 숙소에 가서 먹었어요. 하도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점심도 숙소에서 먹은 것 같아요. 그리고 숙소가 멀지 않아요. 공장 옆에서 버스타면 몇 정거장 왔다 갔다 했으니까 거리도 멀지 않아요.


문) 공장이 굉장히 컸나 봐요?

답) 무지하게 크죠. 말하자면 지금 영등포 시내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아요. 차 타지 않으면 걸어 다녀서는 못가죠. 원채 거리가 머니까. 허허벌판인데.


문)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하셨어요?

답) 토요일까지는 일하고 일요일은 놀았는지 안 놀았는지. 근데 바쁜 데니까 일요일도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았는데 하도 오래돼서 생각이 잘 안 나네요.


문) 토요일에도 일하셨어요?

답) 아, 토요일은 일하죠. 그 때는 매일 같이 B29가 폭격(*폭탄)을 수 백 개씩 떨어뜨리고.. 저녁 4시쯤 출발해서 새벽 4시경에 끝내고 가요.  


문) 상관은 일본인이었나요?

답) 일본 놈은 내선일체 내선일체 해서 상관이라기보다 우리끼리 반장, 분대장 정해서 했지. 걔네들이 대장 노릇한 건 없고, 제일 우두머리가 일본 놈이 있기는 하죠.


문) 반장, 분대장 했던 사람은 조선인이었어요?

답) 그렇죠.


문) 반장이나 분대장은 어떤 식으로 정했어요?

답) 그 사람들도 우리랑 마찬가지죠. 그 사람들이 뭐 특별히 일본놈 앞잡이를 한 것은 아니겠고.


문) 계급은 있었어요? 공원이라던가?

답) 그런 계급은 없죠. 공장식으로 계급이 있는데, 사진 속에 요 동그란 것이 계급이나 마찬가지예요. 오래 근무한 사람은 이게 색이 달라요. 파랗고 노랗고 하죠.

(*주: 숙련공과 비숙련공을 구분하는 표식이 있었던 것)


문) 임금은 받으셨어요? 돈은 안줬어요?

답) 돈을 줘야 살지, 돈 없으면 용돈을 쓸 수가 있나요. 한 달에 한 200엔씩 탔나? 180엔, 150엔 씩 타다가 아마 해방돼서 나올 무렵에는 250엔인가 200엔 탔어요. 그 때는 250엔이면 큰돈이에요. 그 때는 광목 한통에 80엔, 100엔이었어요. 지금은 광목 한 통에 몇 십만 원 갈 거예요. 그러니까 250엔이면 광목 3통 값은 된다고, 그러니까 적은 돈이 아니죠.


문) 매달 나왔어요?

답) 그렇죠. 일본놈이 그런 거는 철저히 해요. 아 철저히 하나마나 안주면 우리가 견디질 못하는 걸요. 우리 용돈을 줘야 차비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사먹고 하지, 용돈도 안주고 강제로 하면 굶어죽지 공장에 다닐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공장에 다닐 능력을 만들어주는 거죠.


문) 혹시 저축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일부만 지급한 것이 아니고 전액이 나왔어요?

답) 매달 일본놈이 월급 주다시피 한 거죠.


문) 돈은 주로 어디다 쓰셨어요?

답) 시내 놀러갈 때 차를 타야하니까 쓰고, 과자나 먹고 싶은 것 사먹으면 돈일 필요하니까 거기 썼죠. 그러니까 거의 용돈이죠. 걔네들은 월급이라고 부르지만 용돈 쓰라고 준 거죠.


문) 구타는 없었어요?

답) 그런 것은 없지. 그 때는 우리 한국 청년들을 이용을 안 하면 견디질 못했어요. 전부 청년들은 우리 한국사람 밖에 없으니까. 한국인은 전부 애송이들 20세 전후에 그런 사람들만 불러다 쓰고 일본 사람들은 다 군대 가서 청년이 없죠.

(*주: 일본의 남성 청년들은 군대로 다 나가서 산업체에 인력이 절대 부족했다.)


문)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은 사람은 없었나 봐요?

답) 육군 조병창에서 구박한 사람은 없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일 잘했으니까요.
뭐 거기서 결혼을 하고 사는 사람도 있긴 있는데 우리는 한국에 가고 싶었지.


문) 도망간 사람은 없었어요?

답) 광산 같은 데는 도망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는 도망가는 것은 없고, 그냥 열심히 일이나 하는 거죠. 그 때는 내선일체 내선일체 해서 일본놈을 만들다시피 해서 그런 건 없었어요.


문) 해방된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방송을 통해 아셨어요?

답) 방송 다 나왔죠. 우리는 일을 하느라고 나중에 재방송으로 들었고, 일본 여자고 남자고 땅 바닥을 치면서 울고불고 했으니까 망한 것을 알지. 우리들은 거기서 감 놔라 배 놔라 잘난 척은 못했지만 한국 사람들, 애국자들은 창고 때려 부수고 물건 가져가는 사람도 많이 있었어요.


문) 공장에서 귀국 편을 마련해주지 않았어요?

답) 지금으로 따지면 퇴직금이라고 할까? 퇴직금 계산해서 다 해주고, 갈 때 먹으라고 사과, 떡 같은 걸 배급해줬어요.


문) 나라가 망했는데도 다 챙겨줬어요?

답) 먹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 챙겨줄 거 챙기고 퇴직금 다주고 그랬어요.


문) 일하기 전에 몇 년 일하면 얼마 준다는 계약은 했어요?

답) 일본놈이 계약이라는 것은 없죠. 저희들 마음대로 죽을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죽으면 죽고 말면 말고 그랬겠죠. 뭐 잘 모르지만 일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일 시켜 먹으려고 그랬을 거예요.

(*주: 질문자의 거듭되는 질문에 압박을 느낀 증언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고 있다.)


문) 집안 형편은 어땠어요?

답) 먹고 사는 데는 별로 걱정을 안했지요. 아버지가 목수라서 돈을 잘 벌었어요.


문) 일할 때 다친 적은 없었어요?

답) 그런 것은 없었어요.


문) 70년대에 보상은 못 받으셨죠?

답) 우리 또래는 김종필을 좋아하지 않죠. 박대통령 시절에 보상이라고 받아가지고 정부에서 다 썼지. 우리는 한 푼도 알지도 못하고 단 몇 십만 원이라도 이게 그 때 보상받은 거다 좀 나눠줬으면 고맙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때 시절을 모르고 살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니까 김종필이가 일본놈한테서 보상받아서 그냥 정부에다 다 쓰고 했으니까 우리 또래는 적극 비판이죠. 그러니까 김종필을 나쁜 사람이고 생각하죠. 그리고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요 근래에 와서 알았어요.

(*주: 한일예비회담에 있어서 한국 측은 일본에게 민간인에 대한 배상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한국정부에게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고, 일본 측은 그 당시 일본인의 신분이었으니 당연히 일본인과 동일한 배상을 할 것인데, 우선 피해자의 규모를 파악한 것이 있으면 그 자료를 공유하자고 했고, 만일 자료가 없다면 앞으로 조사를 해서 자료를 만들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왜냐하면 사망자, 불구자도 있을 수 있고, 단순이 임금을 체불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를 뭉뚱그려 “피해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인 보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 일본 측에 체불된 임금이 있거나 하는 것은 모르시죠?

답) 그런 것은 없죠. 일절 없어요. 퇴직금을 다 계산해서 타가지고 나왔으니까 우리는.


▦ 출처1: 강제동원구술기록집 『조선이라는 우리나라가 있었구나 – 일본편』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8년)

▦ 출처2: 백년역사 https://blog.naver.com/kanter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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