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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히스토리 전쟁야사 3: 휴식과 오락 2021·09·09 11:52

[편집부]


브라운 대학교와 보스턴대학교 연구진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자살한 미국 현역 및 퇴역 군인의 수는 같은 기간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보다 4배 많다”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미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타임스 보도).

관련하여 전쟁 당사국 군인 전사자 수는 남베트남 27만명 미국 5만8315명, 한국 5천99명, 북베트남&베트콩 110만명 등 도합 143만여명으로 추산(wiki)된다.  

여기에 미국의 현역 및 퇴역 군인 자살자 4배수를 적용하면 미군(출신) 자살자 총수는 23만3천여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당시 파병 미군 53만6천명의 43.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들이 베트남에서 전쟁 트라우마(PTSD)에 시달리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미 당국은 군인들에게 휴식과 오락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지역은 베트남 현지를 포함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동남아 일대 국가의 관광지가 폭넓게 제공됐다. 그리고 미군들은 그곳에서 잠시나마 술과 섹스로 죽음을 잊을 수 있었다.

『외설과 포르노에 대한 미국 위원회의 보고서』(1970)에 따르면, 미국의 포르노 산업은 매년 5억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 구매했다.

빅토리아 시대 포르노그래피에서 묘사되었던 남성의 환상 세계 ‘포르노토피아’는 현대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은 즉시 포르노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그들은 성노동자와 제한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는 환경에서 인위적인 자극인 포르노를 찾아 성을 해소하고자 했고, 미 당국은 병영 내에서의 제한 없는 성인잡지 공급(판매)으로 화답했다.

참고로, OECD 회원국 성性정책 현황에 의하면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공식적인 완전 불법화는 한국, 아이슬란드(루터교), 리투아니아(가톨릭)이며, 나머지 회원국은 합법화 내지는 사실상 관용 입장.

다음은 히스토리채널 방영 다큐 『#섹스_히스토리_전쟁야사 – 베트남전』 의 내레이션을 옮긴 것이다.
 

 

5.
Rest and Relaxation
휴식과 오락 (R&R)


베트남의 모든 미군들은 군 복무 중에 R&R이라고 불리는 1주일간의 휴가를 제공받았다. 많은 병사들이 휴가를 가족과 보냈지만 보다 자극적인 시간을 원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환락을 원하는 병사들을 방콕이나 싱가폴, 해남 등지로 실어 나르기 위해 미국 정부가 해남 공군기지에 쏟아 붓는 비용이 1년에 2,300만 달러에 달했다.  

미군 사령부는 병사들에게 여자를 어디서 살 수 있고, 성병에 감염되면 어디로 가야할지 자세히 안내했다. 때론 이런 안내문까지 제공했다.
<여자들은 아침이 되면 밤만큼 멋져 보이지 않으니 24시간 이상 돈을 주고 즐기지는 말라.>

스티븐 N. 에드먼즈(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
“R&R은 모두 그 날만 기다렸죠. 사실 R&R이란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그 말은 휴식과 오락을 줄인 말인데 우린 휴식이 아니라 음주와 섹스를 즐겼으니 말입니다. 전 방콕으로 가서 그 날만 기다렸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마사지 업소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그런 곳은 넘쳐났다. 미군 병사들은 전투를 마친 후 안마시술소를 찾았고 동양의 여인이 제공하는 온갖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제임스 R. 피터슨(‘성의세기’ 저자)
“전투를 끝내고 나서 그곳에 가면 여자가 나체의 몸을 씻어 주었죠. 섹스를 하기 전에 아주 긴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70년대에 미국에도 마사지 업소가 있었지만 그런 서비스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죠.

스티븐 N. 에드먼즈(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
“황제처럼 대우를 받았고 기분도 아주 최고였습니다. 전 5일간의 R&R 동안 같은 여자를 만났어요. 휴가비로 250달러를 받았는데 호텔 숙박비로 30달러를 내고 휴가기간 동안 30달러가 들었습니다. 택시기사가 어디든지 안내를 했죠. 여자는 하루에 14달러였어요. 3일이 지나면 수중에 8달러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R&R의 경우 1주일에 불과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섹스는 일상에서 동떨어진 환상일 때가 많았다.

  

6.
GI. JO
군인 ‘조’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해프너는 이미 1960년대 미국에선 이미 저명인사였다. 그가 발행한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는 태평양 건너 베트남까지 팔려갔고 엄청난 주문이 베트남에서 밀려들었다.

휴 해프너(‘플레이보이’ 창간인)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터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플레이보이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죠. 모든 것을 준비한 후 그 일을 바로 조 콜린스에게 맡겼습니다.”

19살의 조 콜린스가 베트남의 미군 기지를 찾았고 그녀의 손에는 플레이보이 특별판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군인 조’라는 애칭을 얻었고 미군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플레이보이를 베트남전을 위한 잡지였다고 해도 될 겁니다. 병사들이 전투 중에도 우리 잡지를 가지고 다녔으니까요. 미군들은 기지 안에도 플레이보이 클럽 같은 걸 만들어 두었습니다.”

플레이보이의 누드 사진이 곧 내무반을 도배했고 베트남전 동안 판매부수는 700만부에 달했다.  

제임스 R. 피터슨(‘성의세기’ 저자)
“플레이보이 모델을 애인처럼 생각했습니다. 베트남에 도착해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모델 사진을 내무반 벽에 붙이는 일이었죠.”

에릭 칼슨(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
“매점에서 살 수 있었죠. 안마를 받으러 안가는 동료들이 플레이보이를 즐겨보는 것 같더군요. 뭐 저는 원하기만 하면 여자와 즐길 수 있어서 플레이보이를 자주 보지는 않았습니다.”

수잔나 브레슬린(작가)
“군인들에게 포르노 사진은 아주 중요합니다. 환상으로라도 성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까요. 베트남전 때 포르노 잡지는 전쟁의 공포를 잊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상적인 탈출구였습니다. 일종의 환각제였죠.”

1969년 신임 대통령 닉슨이 캄보디아 폭격을 명령한 후 거대한 반전 시위 물결이 미국 전역과 워싱턴에 휘몰아쳤다. 많은 뮤지션들이 혼란스런 시대와 성의 자유를 노래했다.

미 전역에서 콘서트와 축제가 열렸고 당시 뉴욕에서 개최된 축제에는 50만 명의 인파가 몰려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 음악과 메시지는 베트남의 미군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제임스 R. 피터슨(‘성의세기’ 저자)  
“60년대를 돌아보면 노래 가사의 주된 소재가 성이었죠. ‘이 밤을 함께 보내요’라는 롤링스톤즈 음악도 가사에 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짐 모리슨도 노래 속에 성에 관한 태도를 드러냈죠. 당시 뮤지션들은 섹스를 즐겼고 베트남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든 곳에 그런 음악이 퍼져 왔습니다.”

음악은 다양한 약물과 함께 성을 위한 활력소가 됐다.  주로 베트남의 매춘여성들이 미군기지 주변에서 병사들에게 대마초나 마약을 판매했다.
“기지 안 철책선에 서 있어도 마약을 살 수 있었습니다. 철책선 바로 너머에 마약을 파는 사람이 있었죠. 밀림에 있을 때 약이 필요할 때도 있고, 섹스를 위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계속)

*사진: vintag.es, nytimes "플레이보이의 가치는 군인 개개인을 넘어 군대 전체로 확장되었다. 이 잡지는 군의 유용한 사기 증진제가 되었으며, 때로는 집에서 보내온 편지에 필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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