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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후기] 힐러리 & 트럼프, 그리고 촘스키 & 지젝 2016·11·10 13:40

최덕효(대표겸기자)

문제는 자본, 해법은 변화 향한 진보의 토대 구축

지난 8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는데요. 이와 관련, 애초 힐러리를 선택한 촘스키와 트럼프에 의미를 둔 지젝의 견해가 흥미롭습니다.

촘스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 차이가 크다면서, 예컨대 지구온난화 현상을 들어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공화당은 세계를 파멸시키려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당연히 민주당쪽에 투표하는 게 옳다는 입장입니다.

지젝의 생각은 다릅니다. 만일 트럼프가 이기면 두렵긴 해도 양당이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힐러리는 월가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진보적인 것처럼 꾸미는 위선 탓에 그녀의 승리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죠.

이 두 사람은 2012년에도 언쟁을 벌인 적이 있군요.

“나는 다음절(多音節)로 된 화려한 용어를 동원하면서, 이론 같은 것은 전혀 없으면서도 뭔가 이론을 가진 척하는 가식에는 관심이 없다. 지젝이 대표적인데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전혀 모르겠다”

라며 촘스키가 지젝을 가식적이라고 비판하자 지젝은 팩트로 답합니다.

“촘스키는 실증적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데, 난 촘스키만큼 실증적으로 틀린 사람을 알지 못한다. 일례로 촘스키는 1970년대 크메르 루주의 학살을 부인했지만 학살이 실제로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촘스키는 기본적인 사실도 파악하지 못한다”

미 선거로 되돌아가 봅니다. 유권자들 중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나는 부패한 사람보다 모자란 사람을 택하겠다."
"구정물을 걸러내고(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 등 기존 정치인들 부정 암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트럼프에 투표했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
"평생 부정부패로 사기치는 정치인들만 봐왔기 때문에 트럼프를 찍었다. 우리는 뒷처리를 하고, 그들은 $을 번다.“

이들 유권자들이 볼 때, 힐러리가 남편인 클린턴처럼 월가로부터 거액의 강연료와 선거 자금을 챙긴 것은 자신들의 어려운 삶과 비추어볼 때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죠. 불의한 돈을 받은 정치인이 정의를 말한다? 이러한 부패 혐의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용납이 되겠습니까.

따라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힐러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요. 그녀는 양립 불가능한 진보와 친자본성 정책을 대중적인 립서비스로 동시 패션한 게 드러난 겁니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인 클린턴과 함께 부부도박단과 같은 기만적 치부를 뒤늦게나마 미 여론이 간파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사실 자본가인 트럼프의 유일한 대항마는 그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와 월가의 관계를 일관되게 비판하며 대안 사회주의를 논한 버니 샌더스였죠. 그러나 민주당은 위선적인 유사자본가 성격의 힐러리를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트럼프에게 대통령을 선물한 셈이 된 거고요.   

한편, 일각에서는 생뚱맞게 오바마를 흑인으로, 힐러리를 여성으로, 트럼프를 백인으로 보는 <인종주의>가 설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늘상 그랬듯이 미 대선이 오십보백보 자본가권력을 중심으로 이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여론전임을 설명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향후 미 정치를 트럼프의 일방적 카드놀이패 쯤으로 여기는 건 큰 오산입니다. 민중들의 다양한 요구와 민주· 공화 양당 다수 인사들의 힐러리 지지는 미 대통령제가 아무리 승자독식판이라 하더라도 결코 만만한 견제세력이 아니니 말입니다.  

다시 촘스키를 보죠. 1971년에는 푸코와 촘스키의 만남이 있었는데, 여기서 푸코는 결과적으로 권력을 얻기 위해 정의가 수단이 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촘스키는 권력은 정의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역설하죠. 그날 이후 촘스키가 '착하다'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양당을 선악구도처럼 본 착한? 촘스키와 달리, 트럼프의 '고립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힐러리가 주장하는 진보의 위선을 지적하면서 '변화'에 주목한 덜 착한? 지젝, 그리고 정의의 수단화를 우려한 덜 착한? 푸코가 돋보이는 공황기 자본주의 시절입니다.    

미국에서 ‘콜록’하면 즉시 독감 걸릴 정도로 취약한 사회가 한국이죠. 두 철학자 사이에서 오간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적 사고의 간극은 우리 사회에도 물론 적용 가능하고요. 오늘 트럼프를 선택한 팍스 아메리카의 상황을 대-한민국의 87년 체제와 견주어 보는 건 어떨까요. 진보의 토대 구축에 어느 쪽이 더 유용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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